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윤이 과거 로그 3

카테고리 없음

by 힌더 2025. 6. 21. 01:23

본문

윤이 과거로그2 이후의
윤이의 남동생 진이 시점 독백로그입니다.
짧음 
 
 
 
 
 
 
 
 
 
가끔 생각하곤 한다.
당신이 언제부터 나쁜 사람이 되었는지를.
 


 
 
내가 기억하는 서 윤은 좋은 사람이었다.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다정하고… 선했다. 천덕꾸러기인 나와 다르게, 모두에게 사랑받는 얌전하고 착한 첫째 도련님. 그게 어릴 때의 그였다. 나에겐 좋은 형이었고 서 율에겐 좋은 오라비였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는 착하고 믿음직한 장남이었다. 그는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 우리를 먼저 챙겼고 보살폈다. 뭔가 해 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법 없이 들어주었다. 내가 심술을 부리거나 떼를 써도, 그가 아끼던 물건을 부쉈을 때도 화를 낸 적은 없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났긴 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과거의 서 윤은 그 나이치고 어른스러웠다.
 
올곧은 면도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여동생의 탓으로 돌리며, 그 아이를 냉대하고 원망했었다. …어린 마음에 나 역시 그리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늘 예의 바르고 얌전하던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화를 냈었다. 그건 서 율의 잘못이 아니고, 이러는 걸 어머니가 아시면 슬퍼할 거라며 아버지에게 대서다가 결국 한 대 얻어맞았던 그가 생각났다. 그럼에도 그는 뜻을 꺾지 않았다. 이후에도 여동생을 감싸고 아껴주었다. 아버지가 안 했던 아비 노릇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정성을 다해 서 율을 보살폈었다.
 
총독부의 관료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의사가 되고자 했던 이유 역시 좋은 사람다웠다. 그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중인 놈들이나 하던 일이라며 반대했지만 그는 강경했다. 결국 그는 가지 말라고 울며 붙잡는 서 율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의사가 되어 돌아왔다. 서 윤은 평소엔 물러 터졌으면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좀체 타협하지 않는 면이 있었다. 나는 그런 당신을 좋아했었다. 존경하기도…했었다.
 
…그랬던 당신은 왜 타락했을까. 대체 언제부터 내가 아는 서 윤이 아니게 된 걸까. 가만히 기억을 되짚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뚜렷한 계기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후에도 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는 나와 울적해하는 서 율을 보듬어주고, 의사로서는 본인의 신념대로 아픈 이들을 도왔다. … 언젠가부터는 늦게 귀가하는 일이 빈번해졌지만, 그건 환자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라 했으니 큰 연관은 없을 터였다. 그 때문에 잠을 줄여서 피곤한지 자주 부주의하게 다쳐서 자잘한 상처를 달고 살았던 게 기억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가 부러진 그를 마주하기도 했었다. …그런 점까지, 내가 아는 서 윤다웠다.
 
계기나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정확한 때 역시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확신할 수 있는 시점이 있었다. 내가 혼인하고 첫 아이를 얻었던 해. 오라버니가 너무 늦는다며 서 율이 한참을 징징대서 그를 찾으러 나갔던 그날.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대였고 그날따라 유독 달이 밝았었다. 그가 갈 만한 곳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느 고급 요정(料亭) 근처에 다다라서 발걸음을 돌리려고 했을 때.
 
“다음에 보세, 마코토 군. 즐거운 시간이었어.”
“또 뵙겠습니다, 하시모토 국장님.”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너무도 익숙한 서 윤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을 숨기고 시선을 굴려 그가 맞음을 확인했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낯익었다. 어릴 적부터 종종 집에 찾아왔던 아버지의 지인이었으니까. 서 윤은 총독부 경무국의 간부들을 향해 웃는 낯으로 고개를 숙였다. 윤(允)이 아닌 마코토(允)라 불리면서.
 
그걸 확인한 순간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형이, 저기서, 왜놈들이랑 같이 술이나 처마셨다고.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다 했더니 그런 거였나?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오히려 차분해진다는 게 무슨 기분인지, 그때 깨달았었다.
 
나는 서 윤이 아버지와는 다를 줄 알았다. 총독부의 관료가 되라는 아버지 뜻에 반했으니까. 내심 아버지의 행적을 탐탁지 않아했으니까.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자주 아버지와 싸웠으니까. …아버지가 죽고 나니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이제라도 권력을 쥐고 싶어져서, 총독부에 한 자리 얻으려고 저딴 짓거리를 했던 걸까. 대체 왜.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그날 무슨 정신으로 집에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차라리 잘못 본 것이길 바랐다. 꿈이라도 꿨거나 귀신에게 홀려서 헛것을 본 것이길 바랐다. 집에서 다시 마주한 서 윤은 소름 돋을 정도로 평소와 똑같았으니까. 어디서 옷이라도 갈아입고 왔는지 술 냄새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저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던 나와 여동생을 쓰다듬어주며 웃었을 뿐.
 
차라리 그때 물어야 했는데. 모든 것을 보았다고 털어놓고, 미친 거냐며 따져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가 변하게 된 이유를 아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다가 이해하게 될까 봐.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결국 형제 된 정으로 포용하게 되어버릴까 봐. …내가 아버지를 완전히 미워하지 못했던 것처럼.
 
“……형.”
 
아버지도, 어머니도, 서 율도…… 형도. 모두 사라진 아무도 없는 집. 내 평생의 터전이던 곳이자 내 발로 뛰쳐나왔던 곳에 서서, 가만히 당신을 불러 본다. 뒤늦은 후회를 늘어놓는다.
 
그냥 그때 물어볼걸 그랬어. 당신이… 형이, 대체 왜 그렇게 변하게 된 건지.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그날 바로 물어볼 걸 그랬어. 서 율이 죽고, 모든 일을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차분하게 물을 걸 그랬어. 형이 사라지기 전에 물을 걸 그랬어.
 
심한 말로 몰아붙이면 진실을 말해줄 줄 알았는데, 안 그러더라. 왜 그랬어, 형? 왜 끝까지 침묵했어? 왜 내게는 마지막까지 아무 말도 안 해줬어? 난 여전히 아무것도 몰라. 나한테 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넘기고 난 후에, 대체 뭘 하러 간 거야? 지금은 어디에 있는 거고? 살아 있긴 해? …죽으러 간 건 아니지?
 
“왜 그랬어.”
 
아무것도 안 알려줄 거면, 아무 말도 하지 말지. 혈육을 죽인 괴로움 같은 의미심장한 말도 하지 말았어야지. 그게 대체 무슨 뜻이야. 형이 아버지를 죽이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그렇다면 왜 그날 요정에서 총독부 간부들이랑 어울렸어? 서 율의 장례식에 오지 못했던 이유는 대체 뭐야? 왜 내게 말해주질 않아? 내가 믿음직하지 않아서야? …당신의 행적은 정말 이해되는 게 없어.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돌아와, 형. 와서 말해줘. 들어줄 테니까.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왜 그랬는지, 전부 들을게.
 
……
 
……보고 싶어,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