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삘받아서 한시반 반컷으로 쓴 로그입니다.
일제강점기 배경(해방 전), 방문자 윤이의 독백.
퇴고도 안 함... 어색해도 그러려니 해주십쇼
짧습니다.
쓰면서 들은 브금 : https://www.youtube.com/watch?v=BZYjTVy1haU
나는 무엇을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내가 열 살이던 어느 날, 집 밖에서는 만세를 부르짖는 함성이 들렸다. 수많은 사람의 발소리, 귀를 울리는 총소리, 뒤이어 울리는 처절한 비명.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지만, 어머니는 동생과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창문을 꼭 닫은 채로 바깥의 일을 알려주지 않으셨다. 나중에야 그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게 된 건 그보다 더 나중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다. 동시에 아버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안락한 저택에서 안온하게 살아가는 동안 다른 동포들이 어떻게 생을 이어가는지 알게 되자, 차마 현재를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모든 걸 버리고 뛰쳐나올 수도 없었다. 겪어보지 못한 삶이 두려웠다. 총독부 고위 관료와 친분이 있는 검사의 아들이 아닌, 한낱 조선인 서 윤으로서 살기엔 가혹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의술에 흥미가 있던 것도, 재능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법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뜻에 반하며 의사가 되고자 한 것은, 나의 무력함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싶어서였다. 동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조선인들을 살리고 싶어서. 그것으로 조금이나마, 무지했고 부끄러웠던 지난날에 대해 속죄하고 싶어서.
내게 숭고한 대의 따위는 없었다. 나는 그저 부끄러웠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큰 뜻을 이루고자 죽는데, 그들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자의 아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해도 좋았으니 떳떳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내게 기회를 주겠는가. 조선인 대부분이 손가락질하는 자의 아들을, 누가 믿어 주겠는가.
그런 내게도, 누군가가 내밀어준 손이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기회를 잡았다. 그 앞이 어떤 가시밭길이어도,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하여 나는 조국의 봄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 맹세하며 과거의 부끄러움을 덜어내는 삶을 살았다. 매 순간이 두렵고 무서웠지만, 이제야 비로소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충분했었다.
...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맹세조차 어기게 되었다. 우자로서의 서 윤은 맹세를 지키고 죽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부끄러운 어린 시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겁쟁이로 돌아갔다.
나의 동지들은 삶을 전부 바쳤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거대한 세력과 맞서기를 택했다. 나의 조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와 민족을 짓밟고 여전히 세를 불리고 있는 거대한 제국에 반하는 길을 택했다. 언제 죽거나 잡혀갈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도 용감하게 나아갔다. 떨면서도 발걸음을 물리지 않았다. 죽을 걸 알면서도, 아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대의를 위해 몸을 내던졌다.
나는 아무것도 바친 것이 없다. 나는 그 어떤 것도 걸지 않았다. 내가 동지들처럼 목숨을, 삶을, 인생을 내던졌다면 상황이 달랐겠지.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방안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전부 죽여 버리면 되니까. 총칼을 들이밀며 겁박하는 그들의 방식을 그대로 돌려주면 된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조선 총독부를 초토화하는 데에는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일제의 수뇌부를 참살하는 것 역시 마법사에겐 쉬운 일이다. 금서를 사용하면 단시간 내로 더 많은 괴물들의 숨을 끊어놓을 수도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면, 천황의 입에서 조선을 해방하겠다는 선언을 끌어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생을 걸지 않았다. 내 안전을 버리지 않았다. 대법전을 적대하고 서적경이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택하지 못했다. 부끄럽다고 한 주제에 목숨이 아까워서. 내가 죽으면 나를 영영 잊을 동생들이 마음에 걸려서. 그냥... 두려워서.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으면서 그 말을 가볍게 어겨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비겁한 자다. 두려워하면서도 목숨을 바치는 동지들 옆에서 그들과 같은 척하는 비겁자다. 그들과는 달리 절대적으로 안전한 주제에. 나는 총알 하나로도 무너지고 죽는 이들을 보호해 주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사람이다. 아니, 이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
새벽이 지나고 저 멀리 해가 떠오른다. 비탄에 가득 차 있던 어둠이 슬금슬금 떠나간다.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나를 비참한 아침에 홀로 내버려두고서.
윤이 로그가 벌써 4개째라니...
믿기지않네요 휘령이 로그도 세개뿐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